함양군 마천면 백무동에 위치하고 있는 지리산 한신계곡은 첫나들이폭포, 가내소폭포, 오층폭포,
한신폭포 등 수많은 폭포와 영신봉, 촛대봉, 연하봉 등의 산봉우리가 계곡을 감싸고 있다.
또한 2010년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 72호로 지정된 한신계곡은 세석고원에서 백무동까지 수많은
폭포를 이루면서 10㎞에 걸쳐 흐른다.
특히 백무동 위에서 세석까지 흐르는 본류 외에도 덕평봉 북쪽에서 발원하는 바른재골, 칠선봉 부근에서
내려오는 곧은재골, 장터목 방향에서 흐르는 한신지계곡 등 4갈래의 물줄기가 합류한다.
본류는 촛대봉과 영신봉 사이의 협곡을 흘러 가네소폭포 바로 아래에서 한신지계곡과 합류하며
지리산 계곡 가운데 폭포를 가장 많이 끼고 있는 아름다운 계곡이다.
◇ 지리산
함양군, 마천면, 강청리 백무동마을의 이름은 창조신화의 여신 마고할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백명의 무당이 배출되었다는 뜻이다. 여신 마고가 반야와 결혼한후 그의 딸들을 전국의 무당으로
배출하였데 지리산 에서 그 딸들이 내려왔던 통로가 바로 이 백무동 마을이라고 한다.
또는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 맞서싸울 무사 백명을 이곳에서 훈련시켜 배출시켰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 하동바위 **** 백무동 산행들머리에서 40여 분 거리 하동바위. 바위가 하동방향을 보고 서 있어
하동바위라 한다 하기도 하고, 하동군수가 여기서 비를 만나 길을 헤맷기 때문에 하동바위라
부른다고 한다. 등산로는 웅장한 하동바위 앞을 가로 질러 나 있다.
◇ 한신계곡
◎ 깊고 넓은 계곡 **** 「깊고 넓은 계곡」의 의미로 한신계곡이며 다른 하나는 한여름에도 몸에 한기를
느낀다 해서 한신계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리산 북부의 깊고 넓은 한신계곡은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에서
세석고원까지의 10Km 한신계곡은 영롱한 구슬이 구르듯 맑고 고운 물줄기의 폭포수의 계곡이다.
◎ 농악의 소리 **** 옛날 한신이란 사람이 농악대를 이끌고 세석으로 가다가 급류에 휩쓸려 몰죽음을
당했다고 해서 한신계곡이 되었다 한다.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계곡에서 꽹과리 소리가 들린다는게
이 지방사람들의 이야기다
◎ 첫나들이 폭포 **** 20여개의 물줄기를 자랑하는 이 폭포는 바람폭포로도 불리고 있다. 한신계곡의
옥수가 처음으로 사바세상에 나와 흐르는 폭포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제다리 아래로 쏟아지고 있는데
다리 위에서 보다 아래서 위로 보는 폭포수가 더욱 장관이다.
◎ 가내소 폭포 * **
가네소는 15m높이의 폭포이며 50여평의 검푸른 소를 만들고 있어 그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 가내소 폭포전설****먼 옛날 한 도인이 이곳에서 수행한지 12년이 되던 어느날 마지막 수행으로
가내소 양쪽에 밧줄을 묶고 눈을 가린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지리산 마고할매의
셋째딸인 지리산녀가 심술을 부려 도인을 유혹하였고, 도인은 그만 유혹에 넘어가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도인은 '에이~ 나의 도는 실패했다. 나는 이만 가네'하고 이곳을 떠났다 하여
'가내소'라고 불리우게 되었다고 한다.
◎ 가내소 기우제****가내소에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영험스런 곳으 전해진다.
기우제 방법도 특이해 부녀자들이 홀치마바람으로 앉아 방망이를 두드린다. 방망이 소리는 통곡을
대신하는 것으로 이는 지리산 마고할매의 통곡을 유도, 그 눈물이 비 가되어 속세를 적시게 한다는
주술적 방법이다. 또 한가지는 돼지를 잡아 피를 바위에 뿌리고 머리는 가내소에 던지는데 이는
산신이 산이 더럽혀지면 씻어내기 위해 비를 뿌릴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 오층폭포 **** 폭포가 5단계로 길게 이어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오층폭포가 있다.
오련폭포라고도 한다. 본격적인 산행은 가네소에서부터 세석가지의 7Km구간이다.
◎ 한신폭포 **** 한신계곡은 첫나들이폭포-가내소폭포-오층폭포-한신폭포로 이어진다.
한신폭포는 2단 폭포는 대략20여m가 넘어보이는 절벽에서 떨어진다. 폭포상층부는 넓고 매끈하여
접근이 불가하고 물줄기가 떨어지는 곳은 바위협곡 높이가 30m이상이다, 웬만한 간큰 사람아니고서는
접근할수 없는 장관이다.. 한신계곡은 수많은 폭포수를 빚어놓은채 끝이나고 마지막 1Km거리는
칼날같은 바위길을 따라 세석으로 이어진다.
◎ 촛대봉****그후 연진 여인은 촛대봉 정상에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 산신령을 향하여 속죄를 빌다가
그대로 망부석이 되었으며, 촛대봉의 앉은 바위는 가련한 연진 여인의 굳어진 모습 그것이다.
◎ 호야봉(乎也峰)****한편 연진 여인의 남편인 호야는 사라진 부인 연진을 찾으려고 날마다 계곡과
그리고 밀림, 산령을 넘어 지리산 일대를 헤매였다. 그때 칠성봉 중턱에서 까마귀로부터 연진의 소식을
듣고 세석평원으로 달려갔으나 산신령의 저지로 세석평원 중턱 능선의 높은 봉우리에서 세석평원을
향하여 연진을 불러도 대답이 없어 날마다 목청껏 불렀다. 그래서 칠성봉에서 세석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절벽 위에 우뚝 솟아있는 호야봉(乎也峰)은 그때 그가 애태우며 섰던 자리 그대로 망부석이
되어 서 있는 호야의 굳어진 그대로라 한다.
◇ 세석평원과 음양수
전설에 의하면 지리산에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은 한쌍의 남녀가 아득한 옛날에 대성동 계곡에서
살았다고 한다. ◎ 호야. 연진****남자의 이름은 호야(乎也)요, 여자의 이름은 연진(蓮眞)이라고 하였다.
연인끼리 남몰래 자유롭고 평화스러운 가정을 꾸미고 맛좋은 산채와 과일을 따서 배부르게 먹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으니 슬하에 자녀를 두지 못함이 한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인 호야가 산과(山果)를 따기 위하여 산골 깊이 들어가고 없는 사이에
근처에 살고 있던 검정 곰이 찾아와서 연진을 위로하며 하는 말이 “이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세석평원에는
소원대로 아들, 딸을 낳을 수 있는 음양수라는 신비의 샘이 있다”는 것을 자랑삼아 알려주었다.
이 말을 들은 연진은 기뻐 어쩔줄을 몰라 하면서 남편과 상의할 겨를도 없이 혼자서 단숨에 음양수
샘터로 달려가서 기적의 샘물을 실컷 마셨다. 그런데 평소에 곰과 사이가 좋지 못한 호랑이가 곰과
연진 여진이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엿듣고는 이것을 그대로 지리산 산신령에게 고해바치니 산신이
대노하여 음양수의 신비를 인간에게 발설한 곰을 토굴속에 잡아 가두었다. 호랑이는 그 공으로
백수(百獸)의 왕이 되었고 또 음양수의 샘물을 훔쳐먹은 연진 여인에게도 무거운 벌을 주어 잔돌평전의
돌밭에서 평생토록 외로이 철쭉꽃을 가꾸게 되었다. 그날부터 연진 여인은 뜻하지 않았던 자신의 불행한
운명을 저주하며, 세석평원에서 날이면 날마다 손발이 닳도록 꽃밭을 가꾸니 철쭉꽃나무는 무럭무럭
자라서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그러나 연진여인은 닳아 터진 다섯 손가락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꽃밭에서
뿌리며 애처롭게 언제까지나 꽃밭을 가꾸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세석의 철쭉꽃은 절세가인 연진 여인의
애처로운 모습을 닮아 그처럼 청초하게 아름답고 또 연진 여인의 슬픈 넋이 꽃잎마다 서려있다.
◎ 음양수****천왕봉 산신령도 연진 여인의 가련한 희생을 보고서는 인간에 대한 노여움을 풀고
기적의 샘 음양수를 인간에게 개방하였다, 세석평원에서 대성골가는 길 옆 큰바위 아래 왼쪽(음)
오른쪽(양)에서 나오는 물이 바위 중간에서 합수하여 샘을 이루어 기적의 샘으로 찿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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