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강원도 영월 마대산 산행을 다녀와서....

산이좋아 그저 산이좋아 2011. 9. 22. 14:26

 

           일시:2011년 9월 18일(셋째주 일요일)               날씨:흐림

          산행지: 강원도 영월 마대산(해발1,052m)

          산행코스:김삿갓 묘역~폭포~어둔이 계곡 합수점~김삿갓 생가~계곡 경사길

                     ~갈림길(안부)~마대산 정상~갈림길~전망바위~처녀봉~선낙골~원점회귀

          산행시간:4시간(중식시간 포함)

 

 

        김삿갓으로 유명한 난고 김병연(1807∼63)이 조부를 비난한 죄책감 때문에 푸른 하늘을 바로 볼 수 없다며 삿갓을 쓰고 정처 없는 유랑에 나선 때는 22살 무렵. 홍경래의 난을 평정하지 못하고 항복해 역적으로 참형당한 선천부사 김익순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시로 영월 향시에서 장원급제했지만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김삿갓은 처자식을 남겨둔 채 방랑의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난 김삿갓은 조부가 참형을 당하자 멸족을 우려해 6살 때 황해도 곡산의 종복 집으로 보내진다. 2년 후 멸족에서 폐족으로 사면되자 형과 함께 귀향했지만 아버지는 화병으로 죽는다. 주변의 멸시를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어린 김삿갓 형제를 데리고 동강 래프팅의 종착지인 영월읍 삼옥리로 이주한다. 하지만 집안의 내력을 모르는 김삿갓은 17살에 결혼해 지난해 김삿갓면으로 이름을 바꾼 하동면 어둔리로 분가해 청운의 푸른 꿈을 키운다.

김삿갓이 5년 동안 살았던 어둔리는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 중 한 곳으로 첩첩산중이다. 명국환의 ‘방랑시인 김삿갓’ 노래비가 위치한 김삿갓계곡 초입에서 김삿갓유적지까지는 약 6㎞. 묵산미술관과 조선민화박물관을 지나면 길섶에 세워진 김삿갓 시비가 줄을 잇는다. 기생의 딸 가련을 향한 연모의 정을 표현한 시, 가난한 집에서 죽 한 그릇 얻어먹으며 지은 시, 잔칫집에서 쫓겨나며 읊은 시가 해학과 재치, 그리고 날카로운 풍자로 나그네를 맞는다.

난고김삿갓문학관과 김삿갓묘, 시비동산으로 이루어진 김삿갓유적지는 강원·충북·경북의 접경지역에 위치한다. 태백산이 끝나고 소백산이 시작되는 이곳의 지형은 노루가 엎드려 있는 모습이라 하여 노루목으로 불리는 곳. 이끼에 뒤덮인 기암괴석 사이로 흐르는 계류가 유리알처럼 맑고 깨끗해 심신마저 청량해진다.

전국을 떠돌던 김삿갓은 1863년에 57살 나이로 전남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의 정시룡 사랑방에서 한많은 생을 마감한다. 3년 후 차남 익균이 부친의 묘를 지금의 와석리 노루목으로 이장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잊혀졌다. 김삿갓의 묘가 다시 햇빛을 본 것은 116년이 흐른 1982년. 영월 향토사학자인 고 박영국 선생이 10여년을 탐문한 끝에 찾아냈다.

금강산을 유람하던 김삿갓은 내금강의 표훈사 능파루에서 시 짓기 내기를 하던 선비들을 향해 ‘我向靑山去 綠水爾何來(아향청산거 녹수이하래)’라는 짤막한 시로 응수한다. ‘나는 청산이 좋아 들어가는데 녹수야 너는 어이하여 내려오느냐’는 뜻으로 김삿갓묘에서 주거지에 이르는 계곡도 내금강 못지않게 청산과 녹수가 어우러진 절경의 연속이다.

김삿갓묘에서 김삿갓 주거지까지는 1.8㎞에 불과하지만 강원도 영월과 충북 단양의 경계를 무려 11번이나 만난다. 사륜구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거친 산길이 도 경계인 계곡을 좌우로 넘나들며 등고선을 그리기 때문이다. 마치 축지법을 쓰듯 한 발에 강원도 두 발에 충청도의 땅을 밟는다고나 할까.

40여년 전 화전민 20∼30 가구가 살던 어둔리에는 김삿갓처럼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한 가구가 있다. ‘우구네집’이라는 푯말이 붙은 화전민 집으로 20년 전 30대 부부가 150년 쯤 된 집을 수리해 삶의 터전을 만들었다. 김삿갓처럼 아들 둘을 낳고 바람소리 물소리를 벗삼아 살아온 부부의 보금자리는 산행객들이 잠시 다리쉼을 하는 휴게소.

김삿갓 주거지는 ‘우구네집’ 조금 못 미친 갈림길에서 마대산(1052m) 등산로를 따라 100m 쯤 올라가면 나온다. 갈림길에 뿌리를 내린 거대한 고목은 수령 250년이 넘은 밤나무로 김삿갓이 방랑을 떠나던 모습을 지켜본 산증인인 셈.

사방이 산에 둘러싸여 하늘이 손바닥처럼 작게 보이는 주거지 앞에는 마대산에서 발원한 작은 개울이 흐르고 밭뙈기도 있어 한 가족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숨어 살기에 좋은 십승지는 세상에 난리가 나도 알 수 없는 심산유곡으로 김삿갓은 이곳에 집을 짓고 학문에 매진했다. 주거지 뒤의 깎아지른 바위 위에는 한두 사람이 앉을 넓이로 축대를 쌓아 김삿갓이 공부도 하고 울분도 달래던 공간으로 추정되는 곳.

1982년에 김삿갓의 묘가 세상에 알려지자 영월군은 각고의 노력 끝에 주거지도 찾아냈다. 주거지를 발견할 당시 본채의 대들보는 썩어 철거된 지 10년이 지났고 바깥채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초가집은 2002년 9월에 복원한 것으로 집 주변에 뿌리를 내린 200년 생 고염나무 한 그루와 돌배나무 두 그루는 해마다 탐스런 열매를 맺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김삿갓 주거지에 ‘현대판 김삿갓’이 6년째 살고 있다는 것. 주인공은 기골이 장대하고 허연 수염이 멋스런 초로의 최상락씨. 영월군의 문화관광해설사로 근무하고 있는 ‘현대판 김삿갓’은 평소에도 도포 차림에 삿갓을 쓰고 죽장을 들고 다니는 인물. 붓으로 김삿갓의 시도 쓰고 색소폰도 곧잘 부는가 하면 너털웃음이 호방해 관광객들로부터 살아있는 김삿갓으로 불린다.

김삿갓 주거지의 툇마루에 앉아 색소폰으로 ‘방랑시인 김삿갓’을 연주하던 ‘현대판 김삿갓’이 한지에 붓으로 일필휘지 한 글은 김삿갓의 시 ‘萬事皆有定 浮生空自忙(만사개유정 부생공자망)’. ‘세상만사가 모두 운명이 정해져 있거늘 덧없는 인생은 부질없이 헤매는도다’라는 뜻이다.

     *참고 하시기를....

 

      오늘 하루 컨디션이 좋지않아 산행시작부터 힘들어 했지만 끝내 완주하고는 개운해 하신 회장님.

            (오늘 1빠로 제일 먼저 도착 하였습니다.....엄살 쬐끔 부렸죠~^^)

 

         산행 들머리.

 

 

       김삿갓 주거터.

 

           거시기....

 

 

 

 

        생각보다 꽤 많은 산꾼들이 찾아와 무척 혼잡하였죠.

 

          막 점심식사를 끝내고 사과 한 입씩 물고 선 아무도 없는 틈에 얼른 정상 인증샷!

 

 

              처녀봉에서 마지막 숨을 고르며....

 

 

             김삿갓 묘역 주변 풍경.

 

 

 

 

 

 

 

 

 

 

           이곳이 강원도,충청북도,경상도 경계지역에 위치해서 인지 썩 강원도 토속내음이 안나더군요.

            맛있는 뒤풀이 음식과 하산주를 한 잔 하면서....

 

 

 

 

 

 

 

 

 

출처 : 늘 푸른 산악회(**부산**)
글쓴이 : 산사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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